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(문단 편집) ==== 불완전했던 야권 단일화, 그 이후 ==== 한명숙 후보가 오세훈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역전패 당한 후, 인터넷에서는 논란이 되었던 이슈가 있었다. 또 다른 야당 후보였던 [[진보신당]] [[노회찬]] 후보의 지지율이 바로 그것. 당시 약 '''3.26%대(14만 3천여표)'''의 유권자가 노회찬 후보에게 표를 행사했는데, 단순계산으로 '''이 표를 합치면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후보를 이길 수 있었다'''. 때문에 한명숙 후보 지지자 측은 불완전했던 야권 단일화를 이번 선거의 분패 이유로 꼽고 야권 단일화(=후보 사퇴)를 끝내 거부했던 노회찬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--역적이랍시고-- 여기저기에서 비난하기 시작했다. 정황적 상황은 노회찬 후보의 일방적 거부라기보다는 서로의 의견 차이에 의한 단일화 무산이었지만,[* 그런데 훗날 팟캐스트 방송에서 노회찬 의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, 당시 민주당은 노 후보 본인에게 직접적인 단일화 요청조차 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.(...) 노회찬 의원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"사퇴하고 싶어도, 사퇴할 명분을 주지 않았다."... 정확한 속내야 알 수 없지만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 여론조사 결과 단일화해도 승패엔 큰 의미가 없을거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.] 당시 야권의 MB정부 심판론이 너무 거센 상황이라서인지 이야기가 이래저래 살이 붙어나가기 시작했다. 한명숙 후보 지지자측은 노회찬 후보의 약 3% 표들이 단일화를 통해 한명숙 후보에게 돌아갔다면, 선거 결과는 한명숙 후보의 승리가 확실했을 것이라며 노회찬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몰아세웠는데, 이후 비난은 한층 더 거세져 한명숙 후보 지지자들은 노회찬 후보의 지방선거 완주 자체를 비방하기도 했다. 특히 노회찬 후보에게는 노회창, 노인제라는 비칭이 붙었다.(...)[* 1997년 [[제15대 대통령 선거]]에서의 여당 분열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. 하지만 노인제라면 모를까, 노회창은 좀 웃기는 표현이다. --물론 이름은 좀 비슷하지만-- 비칭의 모티브가 된 이회창 전 총재는 15대 대선에서 이인제와의 여권분열로 인해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기 때문. 즉, 당시의 이회창 후보은 한명숙 후보와 비슷한 입장이다. 물론 [[제17대 대통령 선거]]에서 이회창 후보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에게 이명박 후보의 득표를 많이 뺐은 일이 있지만, 그것이 이명박 후보의 당락을 좌우했던 것은 아니었다.] 물론 안타까운 패배에 대한 아쉬움이 있겠지만, 한명숙 후보의 선거 패배 책임을 되려 노회찬 후보에게 짊어지게 하려는 시도는 분명 옳지 않은 일이다. 노회찬 후보를 지지했던 약 3%의 표들은 한명숙 후보를 지지한 46.8%의 표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주권의 행사였다. 또 노회찬 후보가 단일화에 응해 사퇴 후 한명숙 후보를 지지했다면, 노회찬 후보 지지자들이 오세훈 후보보단 한명숙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할 순 있지만, 그 표가 무조건 한명숙 후보한테 모두 간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문제다. 노회찬 후보의 지지자들은 오히려 한명숙 후보의 무능함을 지적하기도 했다. 산술적으로 민주당 구청장을 찍고 오세훈 후보를 뽑은 사람의 수(무려 27만명이나 된다)는 한명숙-오세훈의 표 격차(2만6천)보다 많다. 거꾸로 오세훈은 한나라당 구청장 득표의 합산보다 표를 26만표 더 많이 받았다. 당장 [[강동구]]에서만 민주당 구청장 후보가 한명숙보다 '''5만여표를 더 얻었다.'''[[http://blog.jinbo.net/rollingstone/306|#]] 강동구민 민심이 선거 결과를 뒤집고도 남았다는 이야기다. 결국 문제는 한명숙 후보 자체의 득표 부진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. 참고로, 한명숙 후보는 강남구의 경우 민주당 구청장 후보보다 1만3천표를 더 얻었고(지지율차 5%), --물론 오세훈은 구청장 대비 3만 8천표를 더 얻어버렸지만-- 송파구에서도 1% 밖에 차이 안났다. 즉, '''강북에서 한명숙이 구청장들보다 덜 득표한걸 따져야지, 강남이나 노회찬 탓하지 말라는 이야기다'''. 특히 민주당이 2008년 총선 당시 노회찬과 단일화를 했다면 표를 갈라먹을 일도 없이 노회찬이 국회의원에 쉽사리 당선되었을테니[* 반드시 당선되었을거라 단정할수는 없으나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노회찬 후보가 홍정욱 후보보다 앞서 있었다. 결과적으로 홍정욱 후보가 노회찬 후보보다 2000표 정도 더 얻어서 당선되었고, 민주당 김성환 후보가 13,000표를 얻었는데, 이는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.] 결국 민주당의 자승자박이라는 의견도 있다.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4년 후 노회찬 후보는 [[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]]에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이룩하는데 성공하나, 선거에선 낙선하고 만다.[*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좀 웃픈데, [[기동민|민주당 후보]]와는 단일화를 이뤘으나 [[노동당(대한민국)|노동당]] [[김종철(1970)|김종철]] 후보가 끝까지 완주했고, 선거 결과 김 후보 득표-147표만큼 모자라(...) 결국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에게 패하고 만다. 그야말로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셈. 여담으로 이후 노회찬 후보는 2016년 [[창원시 성산구(선거구)|성산구]]로 내려가 3선에 성공했지만 이후 투신 자살을 해서 임기를 끝내지 못했고, 김종철 후보는 [[진보결집+|노동당을 탈당해서]] 정의당에 입당했고, 2020년에 정의당 당대표에 올랐지만 성추행을 저지르고 불명예 사퇴하였다. 그리고 나경원 후보는 2016년 [[동작구 을]]에서 3선에 성공하나, 2020년 [[이수진(1969년 11월)|정치 신인]]에게 밀려서 낙선을 하였고 노회찬과 단일화했던 기동민 후보는 [[성북구 을]]로 가서 2016, 2020년 연달아서 뱃지를 달았다. --결국 최후의 승자는 기동민 후보가 되었다.--] 반면 당시 보수 성향의 후보는 세 갈래로 갈라졌는데 지상욱과 석종현이라는 두 후보 때문에 오세훈이 질 뻔한것도 있으니 노회찬 탓만 하기는 어렵다. 물론 출마한 정당이었던 자유선진당과 미래연합 모두 새누리당으로 통합되었지만. [[제20대 대통령 선거|그리고 이로부터 12년 뒤, 이 선거 결과가 무려 '''대통령 선거'''에서 재현되더니]][* 여론조사에서 [[윤석열|보수 후보]]가 비교적 크게 앞서며 낙관론이 불었으나 실제로는 [[이재명|민주당 후보]] 쪽이 출구조사에서 1%도 안 되는 격차로 밀리는 초접전이었고, 초반 민주당 표가 많이 나오고 중후반에 보수 후보 표가 많이 나와 역전하고 개표율 90%를 넘어 당선 확실이 선언된 것까지 과정이 같았으며, 심지어 진보 후보 표랑 합치면 민주당 후보가 이긴다는 것까지 똑같았다.], [[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|그로부터 '''불과 3개월 후'''에는 이보다 더한 초접전이 옆 동네인 경기도에서 벌어진다.]][* 출구조사에서 [[김은혜|보수 후보]] 경합 우세가 나온 것까지는 당시와 동일했는데, 이번에는 [[김동연|민주당 후보]]가 개표 내내 뒤지다가 개표율 96.6%(새벽 5시 32분)에 극적으로 역전하여 '''0.15%P차(8,913표)'''로 당선되었다. 이로 인해 [[강용석|3위 후보]]가 단일화 거부로 패배의 원흉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는 점, [[김동연|1위 후보]] 측에도 표를 분산시킨 군소 후보들이 존재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, 최초의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에 도전하던 [[김은혜|2위 후보]]가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의 구도 우위에도 불구하고 인물론에서의 열세로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데자뷰 그 자체였다. 더 자세한 내용은 [[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/이야깃거리]] 참고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